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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다녀보자/2016 신장 위구르 자치구

[신장 위구르 여행기] ep04: 투르판 시장

by 창창한 포리얌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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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지역의 시장들은 대부분 현지어로 '바자르'라고 불리운다고 했다. 아무래도 중동과 아시아 그 어느즈음의 문화가 섞여 있는 지역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온 단어이지 싶었다. 중국어로 '차오스(시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위구르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투르판의 바자르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가 보통 '난'이라고 부르는 빵들이었다. 별다른 고명이나 토핑이 올라가 있지 않지만, 두터운 빵을 한입 베어물면 입 속에 퍼지는 특유의 짭잘함과 약간의 향신료 냄새는 늘 색다른 경험을 전해 준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구르 전통 빵들>

시장에는 이 밖에도 전통 의상들과 비단 등을 파는 곳이 많이 보였다. 학창시절 그나마 재미를 느꼈던 세계사 시간에 들었던 '실크로드'의 한 길목에서 이 투르판은 분명 한 몼을 했음이 분명했다. 형형색색의 전통공예품들 사이로 지나가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중국스럽지 않은 중국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장을 보고 있는 위구르 여인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무언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이 눈에 띈다. 흡사 램프 한 귀퉁이를 문지르면 지니가 짜안 하고 나타나 

"나를 풀어주면 소원을 들어줄테니, 거래 한 번 해 보지 않겠나?" 하고 딜을 할 것 같은 작고 예쁜 주전자(?) 항아리 되시겠다.

 

등에 멘 배낭의 무게만 아니었다면 하나쯤 사다가 방에 진열해 두고 싶을 정도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요정이 '이래도 나를 사 가지 않을거야?' 라고 계속해서 마음에 대고 꼬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요술램프 지니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점점 멀어지는 지니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이번에는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본다. 이곳은 견과류와 양념을 파는 구역인 것 같았다. 들어서자마자 고소하고 매운 향이 동시에 코를 감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위구르 지역은 수많은 과일들과 견과류 등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는 자원의 보고라고 한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 지역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은, 자원과 관련된 것도 없지않아 있지 싶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신선한 견과류들>

이 곳의 건포도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비단 건포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깐 호두에서조차 기름기가 번들번들한게 먹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상인은 흔쾌히 두툼한 건포도 한 줌을 내밀었고, 이를 맛 본 사람이 사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보였다. 어느샌가 내 손에는 건포도와 호두가 한 봉지씩 들려 있었고, 친구는 '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심하게 한 번 스윽 쳐다보고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저거 양고기 아냐?"

 

친구가 가리킨 곳에는 양고기가 통째로 판매되고 있었다. 꼬치에 달린 양고기는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통쨰로 걸려있는 양고기를 보는 것이 한 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한국의 오일시장에서 돼지고기를 덩어리로 판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 거 보면, 이건 겪어보지 않은 문화를 처음 접하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치부해 두자.

 

흔히 양고기 하면 내몽고와 하얼빈 등 중국의 동북지방을 떠올리지만, 신장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 한 줄을 남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춘천 닭갈비와 동해 물갈비가 서로 원조라고 싸우는 것 즈음은 아이들 소꼽놀이 정도로 치부해도 좋을 정도로, 이 곳 사람들의 양고기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양고기를 흥정하고 있는 모습>

갑자기 양구이에 칭따오 맥주한 잔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무더운 날씨였다. 5월말의 투르판은 해가 지지않는 도시인 양 저녁 9시에도 하늘이 맑았다. 그리고 그것은 곳 기온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여행의 일정상 수분 섭취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성비 있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수박'이다. 

 

중국의 과일은 한국에 비하여 매우 저렴한 편이지만, 이 곳 신장지역의 수박은 거기에 한 술 더 뜬다. 가격은 중국 본토보다도 더 저렴하며 (대략 사진상의 수박은 한 통에 12위안 -약 2,000-원 정도였다.), 일조량이 긴 탓인지 당도 또한 그냥 아무 수박이나 하나 잡고 먹어도 입에서 침이 줄줄 고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2천원의 행복 수박장수>

후술하겠지만, 신장지역을 여행하는 중에는 길거리에서 수박을 한 조각씩 잘라서 판매하는 것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대략 가격은 하나에 1위안~2위안 정도인데, 생수 한 병도 안 되는 가격에 두툼한 수박을 한덩이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시점인 2023년의 신장은 어떠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1생수=2수박덩어리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수박을 사지 않는데도, 수박장수 아저씨는 흔쾌히 사진촬영을 허락해 주신다. 머리에는 위구르족 전통모를 쓰고 있고, 표정은 사진 찍히는게 다소 어색하신지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 지역에서 꽤 오랬동안 과일장사를 해 오신 듯 했다. 

 

수박을 한 입 베어물고 조금 더 걸어가다가, 닭을 굽고 있는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꽤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눈을 마주치면 무조건 뭐라도 하나 사 먹어야 될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배가 조금 더 고팠다면 (이라기 보다 아까 양고기를 보지 않았더라면) 1인 1닭을 해 보았을 터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양고기라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투르판의 치킨집 사장님>

'꼬르륵'

무언가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온다. 이거 무작정 시장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도앱을 켜 보니 멀지않은 곳에 마을과 상점가가 보였다. 그래, 오늘은 저 마을에 가서 위구르 사람들의 생활상과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거야!

 

나의 가슴은 그렇게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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