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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찾아서

상주전통시장 아롱이식당 시래기백반

by 창창한 포리얌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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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시락국이가?"

"느그 아빠 올 줄 알고 마이 끓이서 그르타. 고마 무라!"

 

엄마는 된장찌개와 시락국을 자주 끓여 주셨다. 아버지꼐서는 늘 퇴근 전에 집으로 전화를 거시고서는 

"엄마한테 된장찌개 끓여 놓으라고 해라" 고 엄포(?)를 놓으시곤 했다.

 

어른이 되어 훌쩍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두 분이 결혼하시고 난 후 어머니꼐서 해 주신 다른 음식들은 그닥 입맛에 맞지 않으셨는데, 된장찌개 하나만큼은 아버지 입맛에 맞게 기가막히게 잘 끓여내셨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음식은 바로 어머니의 필살요리 두 가지 중 하나인 '시락국', 표준어로 하자면 시래기국이다. 사실 밖에서 시락국을 먹게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이번에 다녀온 식당의 시락국은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 맛을 완벽히 재현해 낸 곳이라 소개해 볼까 한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어느 유튜브 채적에서 소개된 근처의 식당이였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휴무일이라고 떡 하니 적혀 있었다. 3천원대에 시래기해장국을 제공한다는 푸근한 인심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상주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가든 시장에는 늘 현지인들이 자주가는 맛집이 있기 마련인데, 이 날은 결론적으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가게는 '상주전통시장' 초입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래기 백반 이외에도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아롱이 식당 외부, 다양한 메뉴들이 보인다>

"혼잔데 식사 됩니까?"

가게 안은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과 단골손님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파전에 막걸이 한사발 들이키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계셨다.

 

"예, 뭐 드실라꼬예,, 일단 앉으소이"

메뉴판을 보니, 동네분들을 상대하는 가게인지라 주로 술안주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롱이식당 메뉴판>

산바섯찌개가 매우 땡겼지만 아쉽게도 2인분부터 된다고 하셔서 다른 메뉴가 되는지 여쭤 보기로 했다.

"그라몬 보리밥시래기국 드이소, 돈은 5,000원만 주면 됩니다"

 

'오천원? 엥 실화입니까 휴먼?"

밀가루다 뭐다 죄다 오르는 판국에 5천원에 백반 한 그릇을 해치울 수 있다는 사실에 이미 맛이 있고 없고는 두번째 문제였고 난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저를 챙겨서 옆에 놓았다.

 

"어디서 오셨는교"
"아, 서울에서 차 가지고 여행다니고 있는데 내려오다가 들렀어요."

 

다른 식당에 가려고 했다가 문이 닫아서 식당을 찾다가 이 곳으로 왔다는 말에, 주인 아주머니는 거기는 해장국 전문점이라서 메뉴가 단촐하다고 하셨다. 뭐 3,500원짜리 시래기해장국이나 5,000원짜리 시래기보리밥 백반이나 가격으로 치면 어느 하나가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기 내는 다시는 안간다카이!"

뒤에서 막걸리를 들이키시던 어르신께서 갑자기 역정을 내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경상도 사투리로 평범하게 말씀하셨으리라,, 다만 억양이 워낙 드세고 큰지라 언듯 화내는 것 처럼 오해할 만 하다 싶었다.

 

그 분 말씀으로는, 거기서 손님이 먹다남은 반찬을 재활용 하는 걸 보셨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는 가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이런저런 않좋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 보니 그 가게에는 단단히 실망을 하신 눈치였다.

 

"그 유튜브하는 사람도 완전 거품이라 거품! 제대로 가게 위생같은거 확인도 안하고 지 입맛대로 맛있다 없다 그란다 안 카이"

이미 거나하게 취하신 어르신께서는 내가 즐겨보는 어느 외식업 사업가에게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셨는데, 이거 더 이상 말을 섞다가는 밥먹기도 전에 체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창 어르신의 비판이 이어지던 와중에 기다리던 보리밥시래기국 백반이 나왔다.

<보리밥시래기국 백반>

구수한 보리밥과 고사리무침, 오뎅, 멸치볶음, 김치, 그리고 시래기국이 나오는 구성이다. 국에 다진 고추를 풀어 넣고 보리밥 한 그릇 말면, 바로 어릴때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게 된다. 눈만 감으면 이거 정말로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로 착각할 정도로 그 맛이 흡사해서 놀랐다. 어느새 국과 밥이 하나되어 국밥이 된 상태로 홀린 듯 먹고 있는 나의 등 뒤로는 TV에 나오는 뉴스거리를 안주삼은 막걸리 어르신의 정치사회 비판 시리즈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고마하이소 손님 밥 안 넘어가겠다"

그제서야 나와 눈이 마주친 어르신은 무안하신지 안주값을 계산하시고는 가게문을 나가신다.

 

시골 외갓집에서 집밥 한 상 얻어먹은 기분을 느끼며 나도 가게를 나선다.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구경을 못 한게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덕분에 또 맛집 한군데를 알게되어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방송이나 유튜브 한 번 타기만 하면 이 식당도 대박이 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연신 손을 내저으시며 동네장사만 해도 충분하다는 사장님의 뒷모습이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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