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이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노 한잔, 베이커리 카페에서 크로와상 한개,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 음 그 이상은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하긴, 2,000년대 초중반에도 왠만한 식사메뉴들은 5,000원은 하던 시절이니 지금에 와서 저 돈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찾는 게 어찌보면 사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무려 혜화역 대학로 주변에 4천원에 대부분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노포 분식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지 않읗 수 없었다. 사실 소식을 들었다기 보다는 병원진료시간이 남아서 여기저기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하겠다.
찾아간 시간이 점심시간 직전이라 벌써부터 손님들이 총총 가게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창문에 쓰여진 메뉴들의 가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라면 떡볶이 등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사메뉴들의 가격이 3,500~4,000원이라니 내 눈이 잘못된게 아니면 가격책정이 잘못된 것인지, 이건 거의 자선봉사활동 수준이 아닌가?
가게는 노부부로 추정되는 분들이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전에 일단 이 곳은 카드계산이 안된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날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계좌이체도 안된다고 하셨다. 현금이 없었던 터라 부리나케 근처의 인출기를 찾아 돈을 뽑아 왔다. 주인 할아버지 께서는 미안하다면서 창가쪽에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사실, 모든 메뉴를 다 먹어보고 싶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 찌개나 제육덮밥을 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 한국인의 대표메뉴인 제육덮밥으로 가 보기로 한다.
엥? 그런데 계란 후라이가 두개이다. 잘못 온 건가 싶어 쳐다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께서 아까 계좌이체 안 된다고 돈 뽑아오게 만든게 미안하다며 계란하나를 더 넣어달라고 하셨더란다. 마침 그 날 많이 걸어다녔던 터라 단백질이 필요한 나로서는 실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인사를 꾸벅하고, 제육덮밥을 비벼서 한 입 먹어 본다. 음. 약간 슴슴한 맛인데 맵거나 짠 느낌의 제육은 아니다. 그리고 고기가 비슷한 크기로 잘려있고, 비계가 거의 없는 걸로 보아서 아마 수입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양념 때문인지 잡내는 많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4,000원이라는 가격에 이 구성이면 감지덕지 90도로 절하면서 먹어야 할 노릇이다.
저렴한 가격답게 많은 반찬이 제공되지는 않고, 김치와 계란국 그리고 단무지가 나온다. 김치는 딱 김치 맛이었고 개인적으로 저 계란국이 참 맛있었다. 별 거 들어가지는 않아 보이지만 매운맛도 잡아주고 칼칼하니 제육덮밥과 잘 어울리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먹으며 카운터 위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 뭔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 집은 라면과 라면밥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신라면, 떡신라면, 신만두라면, 짜파게티가 있는데 모두 라면과 밥의 두가지 버전으로 주문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가격은 500원 차이인데, 따지면 공기밥 한 그릇을 500원에 받는 셈이니 매우 혜자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 오면 저 '신만두라면밥 '이라는 걸 꼭 먹어보고 싶다. 다른 어떠 분식집에서도 저 메뉴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라면+만두+공기밥 구성이 아닐까 생각은 해 보았지만, 가게가 너무 바빠서 주인장에게 여쭤보지는 못했다.
오늘 다녀온 혜화역 대학로 둘리네분식은 30년이 넘는 업력을 자랑하는 오래된 분식집이라고 한다. 리뷰들을 보자니 어릴 적부터 단골이라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꽤나 단골장사도 잘 되는 집인 듯 싶다. 바로 맞은편 마로니에 공원에는 깔끔하고 2030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점들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노포감성의 분식집에서 한 그릇 때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맛집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공항 근처 카페 무튼 (5) | 2022.10.27 |
---|---|
상주전통시장 아롱이식당 시래기백반 (0) | 2022.10.24 |
구디 태국음식점 드렁킨타이 (0) | 2022.10.07 |
나폴리 김민재 고향 통영 중앙시장 빼떼기죽 (0) | 2022.10.01 |
서촌 전통순대국 순대국밥 (2) | 2022.09.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