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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찾아서

나폴리 김민재 고향 통영 중앙시장 빼떼기죽

by 창창한 포리얌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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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경삼남도 통영이다. 물론 6살때까지 살았던 기억이 다이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명절이나 외갓집에 일이 있을 때에는 가족들과 함께 놀러가곤 했던 곳이다.

어릴 적 우리집 냉장고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팥죽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팥죽같긴 한데, 무언가 허연것들이 동동 떠 있는 그것은 먹어보면 단팥죽이지만, 또 먹다보면 달달한 고구마 맛도 느껴지는 참 신기한, 그런 음식이었다. 여름이면 으레 그 죽을 아주 차갑게 식혀서 물을 조금 부어서 마치 음료처럼 마시기도 했는데, 그 기억과 맛이 생생하다.

"엄마, 이그 머라꼬 부르노? 윽수로 맛있다이~"
"그거 빼떼기 아이가 빼떼기"

빼떼기라는 말의 어감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상당히 임팩트 있고 뭔가 딱딱 붙는 단어이다. 흥얼거리면서 걸으면 미친사람 취급받을 법도 하지만, 적어도 통영 거리에서만큼은 저 빼떼기는 매우 신성한 단어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통영에서 빼떼기죽을 찾는 것이 마치 지금은 어머니께서 더 이상 그걸 해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찾아간 통영의 중앙시장에는 간만에 활기가 넘쳤다. 코로나 시국도 그럭저럭 지나가고, 실외 마스크 해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시끌벅적 전통시장만이 풍길 수 있는 향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한 풍경을 뒤로하고 오늘 나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빼떼기죽' 이다. 이 시장 어딘가에는 분명,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 맛을 간직한 찐맛집이 있지 않을까?

<드디어 찾은 빼떼기죽 맛집>

무심코 찾아간 곳은 무려 방송에도 출연했다는 죽 맛집으로 보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어르신께서는 여러가지 죽들을 팔고 계셨는데, 딱 봐도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군침이 도는 색감과 향이 밀려왔다. 하지만, 난 빼떼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여기 빼떼기죽 2인분 주이소!"
간마에 써 보는 사투리가 어색했는지 주인장께서는 씨익 웃으시고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죽 두 그릇을 내어 주신다.
"사장님, 이거 어릴때 저희 어머니께서 차게 해서 주시곤 했는데, 가게에서는 차가운 건 안 파나 보네요?"

사장님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하시고는
"하모, 차게해서 묵으면 더 맛있지! 어째 그걸 알고 계시네?"
"네, 제가 통영 도천동 출신입니더"

외가댁이 있었던 도천동과 중앙시장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통영이 워낙 아담한 도시이다 보니 동 이름만 말해도 대부분 어디서 온 사람이지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죽들을 팔고 있다>

<빼떼기죽, 5,000원>

한입 먹어보니 '와! 어릴 적 그 맛이다'. 순간 뜨거워서인지 감격해서인지 눈물이 한 방울 핑 돌았다. 어릴 적 사촌형들과 바닷가에서 게도잡고 고기도 잡고 하면서 놀던 기억들이 죽 한 숟가락과 함께 스쳐 지나간다. 음식은 잊혀져 가던 추억을 데려다 주는 마법이다.

같이 간 친구는 통영출신이 아닌데도 빼떼기 죽을 매우 잘 먹었다. 사실 우리는 8년 전 쯤 통영에서 이걸 먹어본 적이 있던터라, 이번 여행에서도 꼭 맛집을 찾아서 먹어보려던 참이었다. 찾은 것만해도 감동인데 게다가 맛집이라니, 이 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적지 않아 보이는 양의 죽을 한 그릇 뚝딱하고나니, 가게 한 켠에는 말린 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빼떼기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저 말린 고구마를 밭과 함께 죽으로 끓여내면 비로소 한 그릇의 완벽한 빼떼기죽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죽에는 특별히 설탕이나 물엿 등을 넣을 필요가 없다. 고구마와 팥에서 우러나오는 고소함과 달달함 만으로도 맛은 끝이다.

<말린 고구마, 빼떼기의 주 재료이다>

통영 중앙시장의 빼떼기죽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추억의 재생'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순수하던 그 시절 친척들과 가족들과 함께하며 먹었던 그 맛은 어쩌면 수십만원짜리 오마카세에 뒤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서는 어릴 적 추억의 맛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죽이든, 밥이든, 아니면 어떤 음식이든 간에 추억의 맛은 무엇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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